경찰헬기 조종사가 되는 법|군 조종사였던 내가 경찰항공을 선택한 이유
내가 경찰헬기 조종사를 처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거창한 진로계획이 아니었다.

어느 날 우리 부대에 훈련과 업무 협조를 위해 경찰헬기가 들어왔다.
그 헬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거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군에서 오랫동안 헬기를 타고 있었지만, 많이 지쳐 있었다.
비행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행은 여전히 좋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비행은 좋았지만,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일부 선배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의 압박도 힘들었지만 그것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도 계급이라는 구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뭔가를 이루고도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여기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인가?”
오랫동안 쌓은 비행경력도 있었고, 교관으로 후배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었고, 해외에서 교육받은 경험도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계속 가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상당히 심한 번아웃이 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방향을 잃고 있던 어느 날 경찰헬기가 우리 기지에 들어왔다.
푸른색 계열의 경찰헬기를 보면서 갑자기 생각이 연결됐다.
군에서 쌓은 비행경력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
경찰항공.
그날 이후 나는 경찰헬기 조종사라는 직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자 준비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나도 경찰항공에 대해 잘 몰랐다.
군 헬기 조종사는 익숙했지만 경찰헬기 조종사는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채용공고부터 찾아봤다.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비행시간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실기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면접에서는 무엇을 보는지 하나씩 알아봤다.
그리고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게 합격했다.
나는 종종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운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기회가 나타났을 때 지원할 수 있도록 그동안 비행경력과 경험을 쌓아놓았고, 방향을 정한 이후에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군인이었던 나는 경찰관이 됐다.
헬기 조종사에서 ‘경찰관’이 되다
경찰항공에 들어가며 가장 크게 달라졌던 것은 단순히 헬기의 색깔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조종사이면서 동시에 경찰관이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경찰 교육을 받으며 법과 경찰업무, 현장대응, 국민의 권리, 경찰관의 책임과 역할 등에 대해 배웠다.
교육수준도 상당히 높다고 느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교육받았던 동기들이었다.
변호사 경력으로 경찰에 들어온 동기들도 많았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사람들이 경찰이라는 하나의 조직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교육받았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군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나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신림지구대 실습에서 알게 된 경찰의 현실
교육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가 신림지구대 현장실습이었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보는 경찰업무와 지상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경찰업무는 전혀 달랐다.
신고가 들어온다.
누군가는 화가 나 있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있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경찰관은 그 상황에 들어가야 한다.
현장에는 교범에 정확히 적혀 있지 않은 변수들이 끊임없이 생긴다.
그 실습을 통해 나는 지구대 경찰관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됐다.
경찰헬기 조종사도 결국 경찰이다.
비행을 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내가 왜 이 비행을 하는지, 지상에서 경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국 누구를 위해 헬기가 출동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군 조종사 시절에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이었다.
푸른색 경찰 제복을 입는다는 것

부산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푸른색 제복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
군복을 오랫동안 입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제복을 입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부산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치안 유지라는 임무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이 좋았다.
군에서 국민을 지키는 것과 경찰로서 국민의 일상 가까이에서 치안을 지키는 것은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경찰헬기를 조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종을 타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비행하는 이유가 달라지는 일이었다.
그 점이 나에게는 상당한 만족감을 줬다.
경찰헬기 조종사는 어떤 사람에게 잘 맞을까?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경찰헬기 조종사는 단순히 “군을 전역하고 계속 헬기를 타고 싶은 사람”에게만 맞는 직업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
비행경력을 계속 살리고 싶다.
하지만 군과는 다른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다.
공공의 목적을 가진 비행을 하고 싶다.
새로운 조직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관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지막 항목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경찰항공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의 직업은 단순히 Pilot이 아니다.
Police Officer이자 Pilot이다.
이 순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경찰헬기 조종사는 어떻게 되는가?
경찰헬기 조종사는 일반적인 순경 공개채용을 거쳐 다시 조종사가 되는 방식과는 다르다.
경찰청에서 항공조종 분야 경력경쟁채용을 실시할 때 지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다.
채용공고는 경찰대학의 경력채용자 선발 공지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채용조건과 선발인원은 매년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인터넷에 오래된 정보를 보고 준비하지 말고 반드시 지원하려는 연도의 공식 공고문을 확인해야 한다.
2026년, 경찰헬기 조종사의 문턱이 크게 달라졌다
내가 경찰항공에 지원했던 당시와 지금은 조건이 조금 다르다.
특히 2026년 항공조종 분야는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다.
선발계급이 기존 경위 중심에서 경감과 경위로 이원화됐다.
2026년 상반기에는 항공조종 분야 총 10명을 선발하면서 경감 2명, 경위 8명을 모집했다.
경위의 비행경력도 과거보다 지원 가능한 범위가 넓어졌다.
2026년 상반기 기준으로 알려진 조건을 단순화하면 다
음과 같다.
경위 지원
다음 두 가지 비행경력 조건 가운데 하나를 충족하는 방식이다.
헬리콥터 총 비행시간 1,000시간 이상
또는
헬리콥터 총 비행시간 500시간 이상 + 기장(PIC) 비행시간 100시간 이상
즉 과거에는 비행시간 때문에 경찰항공 지원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비교적 젊은 군 헬기 조종사들에게도 기회가 넓어진 셈이다.
다만 모의비행시간 인정 여부, 최근 비행경력, 사업용조종사 자격증, 항공무선통신사, 항공신체검사 등 세부조건이 있으므로 반드시 해당 채용공고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경감 지원
경력이 많은 조종사를 위한 경감 채용도 생겼다.
2026년 상반기 기준으로는 총 비행시간 2,000시간 이
상, 일정 수준 이상의 기장경력 등 경위보다 높은 경력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군이나 다른 기관에서 기장 또는 교관으로 근무한 조종사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낮은 계급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자신의 비행경력과 책임 수준에 맞는 계급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만 이 기준 역시 매년 달라질 수 있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경감급 채용은 2026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글을 몇 년 뒤 읽고 있다면 숫자를 믿지 말고 최신 경찰청 채용공고부터 확인하기 바란다.
비행시간이 줄었다고 시험이 쉬워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지원 가능한 최소 비행시간이 낮아졌다고 해서 경찰헬기 조종사가 되기 쉬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2026년 상반기에도 항공조종 분야의 첫 단계에는 실제 조종실기시험이 포함됐다.
결국 조종사는 비행으로 평가받는다.
비행시간은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자격일 뿐이다.
500시간을 비행했다고 500시간짜리 실력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3,000시간을 비행했다고 모든 사람이 좋은 조종사인 것도 아니다.
내가 후배 조종사들에게 늘 강조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시간보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지금 다시 경찰항공을 준비한다면
만약 지금 내가 군 헬기 조종사이고 경찰항공 지원을 준비한다면 크게 다섯 가지를 준비할 것 같다.
첫째, 기본 비행을 다시 본다
고경력 조종사일수록 오히려 기본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운용했던 기종의 습관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기평가는 화려하게 비행하는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항공기를 통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계기비행 능력을 놓지 않는다
경찰항공을 비롯한 공공기관 조종사에게 계기비행 능력은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Attitude, Heading, Altitude, Airspeed를 정확히 관리하는 기본적인 instrument scan부터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는 군 조종사들에게 전역을 준비하면서도 IFR 공부를 절대 놓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셋째, 비상절차를 ‘암기’하지 말고 이해한다
Checklist 문장을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그런 절차를 수행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조종사는 Emergency Procedure를 빨리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우선순위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경찰에 대해 공부한다
이 부분을 군 출신 조종사들이 의외로 놓칠 수 있다.
경찰항공 지원자는 단지 헬기회사 Pilot 자리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관이 되려고 지원하는 것이다.
왜 경찰이 되고 싶은지.
왜 경찰항공이어야 하는지.
경찰의 역할은 무엇인지.
국민에게 경찰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이 질문에 자신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군에서 계속 헬기를 탈 수 없어서 지원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섯째, 자신의 경력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본다
면접에서는 단순한 비행시간 숫자보다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비상상황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CRM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
실수했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후배를 어떻게 교육했는가.
안전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그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할 수 없다.
자신이 살아온 비행경력이 곧 답이다.
군 조종사에게 경찰항공을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경찰헬기 조종사가 아니다.
경찰항공에서 약 2년 11개월을 근무한 뒤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경찰항공으로 갔던 선택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인생에서 정말 도움이 된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전혀 다른 조직을 경험했다.
군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관으로 교육받으면서 내가 몰랐던 사회의 모습을

배웠고, 지구대 실습을 통해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의 어려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조직에서도 내가 쌓아온 경험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아웃으로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시기에 경찰항공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래서 경찰헬기가 우리 기지에 들어왔던 그날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 저거다.”
그 작은 생각 하나가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전역을 고민하고 있는 군 조종사에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 지금의 나처럼 군생활에 지쳐 있는 조종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한 조직에 있다 보면 그 조직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계급이 곧 자신의 가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보직 하나, 평가 하나에 자신의 능력 전체가 결정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보니 그렇지 않았다.
군에서 배운 비행.
안전관리.
CRM.
교관 경험.
계기비행.
비상상황에서의 판단.
조직생활.
이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도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무작정 전역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경험을 어디에서 다시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 첫 번째 답이 경찰항공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소방항공일 수도 있다.
산림항공일 수도 있다.
해양경찰일 수도 있다.
민간 헬리콥터 회사나 기업항공일 수도 있다.
앞으로 CaptainPhil Lab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런 헬기 조종사의 진로들을 하나씩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번 글의 첫 번째 이야기는 경찰헬기 조종사였다.
다음에는 또 다른 제복, 또 다른 임무, 또 다른 조종사의 삶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비행을 계속하고 싶다면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음 활주로가 보이기도 한다.
Make each second count.
Captain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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