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는 혼자 날리지 않는다|Multi-Crew Mission과 CRM의 실제
야간 AH-64E 비행에서 다시 배운 CRM
야간이었다. AH-64E 기종전환 과정에서 부조종사를 양성하던 비행이었고, 야간 사격술 관련 훈련을 수행하고 있었다.
비행 전 Crew Briefing에서 나는 양성 대상 조종사에게 평소처럼 한 가지를 강조했다.
“내가 SIP라고 해서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이야기해라. 그냥 넘기지 마라. ‘교관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갖지 마라.”

나는 미국 육군항공학교에서 AH-64D AQC와 Instructor Pilot Course를 받으며 Crew Coordination과 CRM을 반복해서 배웠다. 이후 후배 조종사를 교육할 때도 같은 원칙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그날 밤, 내가 했던 말이 실제 상황이 됐다.
훈련 중 항공기의 고도가 평상시보다 많이 강하되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그 변화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양성 대상 조종사가 상황을 지적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즉시 상황을 다시 인식했고,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안전하게 조치할 수 있었다.
교관인 내가 학생을 가르치던 비행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도운 사람은 내가 교육하던 조종사였다.
나는 이런 경험 때문에 CRM을 단순한 이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조종석에서는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다른 Crew가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발견한 사람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말을 기장이나 교관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Crew Resource Management의 출발점이다.
조종을 잘하는 것과 임무를 잘하는 것은 다르다
헬기 조종을 처음 배우면 대부분 조종간을 잘 다루는 것부터 생각한다. 안정적인 호버링, 정확한 착륙, 비상절차, 계기비행, 기종 지식.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군에서 조종사 생활을 시작해 경찰항공을 거쳐 현재 소방항공 임무를 수행하기까지 3,820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점점 분명하게 느끼게 된 것이 있다.
임무가 복잡해질수록 한 사람의 뛰어난 조종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산악지형에서 Hoist를 이용해 사람을 구조할 때, 응급환자를 이송할 때, 장거리 환자이송을 수행할 때, Belly Tank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할 때, 대형산불 현장에 여러 항공기가 동시에 투입될 때는 더 그렇다.
누군가는 항공기를 조종하고, 누군가는 장애물을 감시한다. 누군가는 통신을 하고, 누군가는 구조 대상자를 본다. 구급대원은 환자를 보고, 임무에 따라 의사와 간호사도 탑승한다. 지상에서는 또 다른 인력이 기상·현장상황·임무정보를 지원한다.
결국 실제 헬리콥터 임무는 조종사 한 명의 독주가 아니다.
여러 전문 인력이 같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CRM은 ‘사이좋게 일하는 법’이 아니다
CRM을 승무원끼리 의사소통을 잘하고 서로 배려하는 방법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의미는 훨씬 넓다.
FAA의 CRM 지침은 비행안전에 필요한 사람, 정보, 장비 등 가용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훈련을 강조한다. 의사결정, 상황인식, 의사소통, 리더십과 팔로워십, 업무량 관리, 상호 모니터링이 모두 연결된다.
내가 현장에서 이해한 CRM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눈과 귀, 정보와 능력을 Crew 전체에서 끌어내 하나의 안전한 판단으로 만드는 것.”
조종사는 모든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교관님이 알아서 하시겠지”가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AH-64E 야간비행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고도 자체가 아니다.
양성 대상 조종사가 말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조종사가 “SIP인데 설마 모르겠어?”, “괜히 이야기했다가 내가 틀리면 어떡하지?”, “교관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그 순간 Crew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안전장치가 사라졌을 것이다.
경험 많은 조종사라고 해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임무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을 놓칠 수 있고, 야간에는 시각정보가 제한되며, 업무량이 올라가면 평소라면 쉽게 인지할 것을 놓칠 수도 있다.
미 육군 Combat Readiness Center는 2026년에도 Two-Challenge Rule을 다시 강조했다. 경험 많은 Pilot in Command라 하더라도 task saturation, fixation, spatial disorientation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고, 다른 Crew의 적절한 challenge가 안전을 지키는 마지막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Two-Challenge Rule|두 번 말했는데도 반응이 없다면
미 육군항공에서 내가 배운 중요한 Crew Coordination 절차 중 하나가 Two-Challenge Rule이다.
한 조종사가 안전상 문제를 발견해 다른 조종사에게 문제를 제기했는데 반응이 없다. 다시 한번 명확하게 challenge한다. 그런데도 적절한 반응이 없다면 단순히 세 번째, 네 번째 경고를 반복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상대 조종사가 fixation, task saturation, spatial disorientation, incapacitation 등에 빠졌을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훈련에서는 필요한 경우 “Emergency! I have the controls!”라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조종권을 확보하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문구 그 자체보다 그 절차 뒤의 철학이다.
상대방의 경험과 계급을 존중하되, 안전을 상대방에게 맡겨버리지는 않는 것.
Crew가 서로를 cross-monitor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복 경고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으로 전환하는 흐름이다.
조종석에서는 계급보다 정보가 중요하다
한국군이나 일부 기관처럼 위계가 분명한 조직에서는 Power Distance가 존재할 수 있다. 경험이 적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상급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문화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Cockpit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야 한다.
나는 후배 조종사들에게 늘 상호 존중과 협업을 강조해 왔다. 단순히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옆 조종사의 손에 내 목숨이 달려 있고, 내 손에는 그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이상합니다”, “다시 확인해 보시죠”, “고도가 낮습니다”, “제가 이해한 내용과 다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위험하다면 “중지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기장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Crew가 필요한 순간에 말할 수 있는 Cockpit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Cockpit에서 애매한 말은 안전장치가 되지 못한다
CRM에서 Communication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좋은 Communication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을 듣고 서로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교육받고 여러 외국인 교관·조종사와 훈련하다 보면 같은 영어를 사용해도 억양이나 발음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한국인끼리도 마찬가지다. 지역색이 너무 강한 사투리, 개인만 사용하는 표현, 지나치게 축약된 말은 긴박한 Cockpit에서 오해를 만들 수 있다.
Cockpit에서는 멋있게 말할 필요가 없다. 표준용어를 중심으로 짧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해가 안 됐으면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다시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지시나 변경사항은 acknowledgement와 readback을 통해 서로 같은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명확한 전달, 이해 확인, 필요한 경우 재확인.
이런 Closed-loop Communication이 있어야 말이 실제 안전장치가 된다.
“You have the controls.”|Control Transfer는 왜 세 번 확인할까

CRM에서 내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본 중 하나가 Control Transfer다.
헬리콥터에는 두 조종사가 조종간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한 질문에 언제나 명확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누가 항공기를 조종하고 있는가?”
미 육군항공에서는 positive three-way transfer of flight controls를 강조해 왔다.
“You have the controls.”
“I have the controls.”
“You have the controls.”
누가 조종권 이양을 시작했는지에 따라 첫 문장은 달라질 수 있지만 원리는 같다.
Sender가 선언하고, Receiver가 확인하고, Sender가 다시 Confirm한다.
특히 AH-64처럼 앞뒤 좌석이 분리된 Tandem Cockpit이나 야간처럼 서로의 손과 조종간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이런 명확한 절차가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미 육군 안전자료에는 조종권을 이양했다고 생각했지만 서로의 인식이 달라 일정 시간 아무도 적극적으로 항공기를 조종하지 않는 상황까지 발생했던 사례가 소개돼 있다. 이러한 사건과 사고의 교훈이 축적되면서 Positive Control Transfer가 더 강하게 강조돼 왔다.
조종권을 넘기는 것은 단순히 손을 떼는 행동이 아니다.
조종권과 함께 책임을 넘기는 행위다.
그리고 한번 조종권을 넘겼다면 상대의 조종에 애매하게 개입해서도 안 된다. 다시 개입해야 한다면 또다시 명확한 Control Transfer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처럼 보이는 절차일수록 실제 사고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경찰항공에서 소방항공으로|Crew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군을 떠나 경찰항공에서 근무하면서 Crew의 구성과 임무는 다시 달라졌다.
경찰항공에서는 조종사와 FI를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방항공으로 오면서 Crew Resource라는 말의 의미를 훨씬 넓게 느끼고 있다.
소방헬기 한 대가 출동한다고 해서 조종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조종사와 FI뿐 아니라 임무에 따라 구조대원과 구급대원이 함께 움직인다. 때로는 의사와 간호사가 탑승하기도 한다.
임무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협업이 시작된다.
누구를 구조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환자의 상태는 어떠한가. 어떤 장비가 필요한가. 현장의 기상과 지형은 어떠한가. 어디까지 항공기로 접근할 것인가.
현장에서는 각자가 또 다른 것을 본다.
조종사는 항공기와 비행환경을 보고, FI와 구조대원은 기체 주변과 구조 대상자를 보고, 구급대원과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를 본다.
복귀한다고 임무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환자를 인계하고 장비를 정리하고 필요한 내용을 공유하며 다음 임무를 준비한다.
그래서 나는 소방항공 임무를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다.
악기가 많다고 좋은 연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전문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서로 다른 박자로 연주하면 음악이 되지 않는다.
한 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체를 보면서 오케스트라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조율해야 한다.
실력이 좋아도 함께 임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오랜 시간 여러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과 비행하다 보면 기술적인 능력 외에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고, 성격이 너무 급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며, 항상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개인의 조종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이런 태도는 Multi-Crew Mission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처음에는 다른 Crew가 의견을 낸다. 하지만 의견을 계속 무시하면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지 않게 된다.
“이야기해도 안 들을 텐데.”
“괜히 분위기만 나빠질 텐데.”
그 순간 Crew Resource 하나가 사라진다.
CRM은 친하게 지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요할 때 의견을 낼 수 있고, 틀렸으면 수정할 수 있고, 다른 전문영역의 판단을 존중할 수 있는 Professional Teamwork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구조·구급·소방처럼 여러 직종이 하나의 항공기에 함께 움직이는 임무에서는 이런 협업이 선택이 아니라 임무 수행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Crew Briefing은 ‘아는 내용을 읽는 시간’이 아니다
Two-Challenge Rule, Control Transfer, Emergency Action, Communication, 각자의 역할과 책임, 예상 위험요소.
이미 여러 번 교육받았고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그런데 왜 비행 전에 다시 확인할까.
항공에서 많은 절차는 누군가 책상에서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실제 사건과 사고에서 발견된 인간의 실수와 시스템의 약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지고 강화된 것들이 많다.
그래서 Crew Briefing은 형식적인 낭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임무에서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위험을 예상하는지, 예상과 다른 상황이 생겼을 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나는 Briefing의 목적이 Crew가 같은 그림, 즉 Common Mental Model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머릿속에 다른 임무를 그리고 있다면 실제 상황에서 협업하기 어렵다.
반대로 비행 전부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을 때 Crew의 반응은 훨씬 빨라진다.
소방헬기 임무는 결국 Multi-Crew Mission이다
SAR, Hoist Rescue, EMS, 장거리 환자이송, Belly Tank를 이용한 화재진압, 대형산불 진화.
각각 사용하는 장비도 다르고 절차도 다르며 위험요소도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임무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헬리콥터 임무비행을 공부하려면 Aircraft Handling만 공부해서는 부족하다. 사람을 이해해야 하고, 의사소통을 배워야 하고, 업무를 나눌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의 한마디가 더 정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AH-64E 야간비행에서 나에게 고도 변화를 알려준 조종사는 당시 내가 교육하던 양성 대상자였다.
나는 SIP였고 그를 평가하고 교육하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관점에서는 그 순간 누가 교관이고 누가 학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상황을 발견했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 정보를 받아들였고, 그래서 더 일찍 조치할 수 있었다.
그것이 Crew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3,820시간 이상 비행하면서 이해하게 된 CRM이다.
좋은 조종사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다른 Crew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사람이 말할 수 있게 만들며, 필요한 순간에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헬기는 한 사람이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임무는 결코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헬리콥터를 결국, 함께 날리는 항공기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이제 실제 SAR 임무로 들어가 보자

다음 글에서는 이 이야기를 실제 임무 속으로 가져가 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SAR(Search and Rescue), 헬리콥터 수색구조 임무다.
조난자를 찾고 구조한다는 짧은 문장 뒤에서 조종사와 구조대원, 임무승무원은 무엇을 보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CRM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하나씩 이야기해 보겠다.
※ 이 글은 헬리콥터 운항과 CRM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한 콘텐츠입니다. 실제 비행 및 임무 수행에는 해당 항공기의 비행교범, 관련 법규와 소속 기관의 운항규정·SOP가 우선 적용됩니다.
Make each second count.
— Captain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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